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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19-10-22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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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의정부시 아이사랑 수필공모전 '최우수상'

조선미-'의정부시 다자녀가족이 되기까지'

기사입력 2019-10-07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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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의정부시 아이사랑 수필공모전

최우수상 조선미


둘이 하나가 되었는데.. 신혼이 참 길었네

 

신랑과는 첫 사회복지현장이었던 청소년쉼터에서 만났고 2년 반 연애를 통해 20099월 결혼하여 올해 결혼 10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벌써 결혼 한 지 10년이 되었네요..

 

결혼할 당시 저희 둘은 제 나이 27, 신랑 31세로 바로 자녀계획을 세우진 않았습니다. 당시 저희는 아이를 가질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신혼을 더 즐기고 싶었던 것도 있었고,

 

7평의 4층 꼭대기 빌라의 신혼집은 한 여름에는 너무 더워 둘 다 나체생활을 하거나 밖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귀가해야했고 한 겨울에는 실내온도가 15도를 넘기기 어려워 파카를 입고 생활해야 할 정도로 열악하였기 때문에, 그리고 당시 제가 대학원에 입학하여 더 공부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

 

이런 저런 여러 이유들로 저희 부부에게 자녀는 당분간은 해당사항이 없는 영역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둘 다 신체가 건강하니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임신이 떡하니 될 꺼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약 2년여의 시간 동안 저희 두 부부는 결혼은 했지만 연애의 연장선처럼 1년에 한 번씩은 해외여행도 다녀왔고 서로의 개인생활도 어느 정도 존중해주며 한 마디로 프리하게 살았죠~

 

그러다 우리도 이제 아이를 가져볼까? 란 생각을 하게 됐고.. 그때부터는 피임을 하지 않고 나름 노력을 했는데 웬일~ 석 달이 지나고 6개월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는거예요.

 

30을 바라보는 저는 순간 급해졌고 병원을 찾아 진단을 받았죠~ 병원에서는 큰 문제가 없는 것 같으니 배란일을 한 번 맞춰보자 하셨고 그렇게 또 석 달, 이래저래 임신을 시도한지 1년이 되었고 병원에 청천병력 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일반적인 부부가 피임을 하지 않고도 1년 동안 임신이 되지 않았다면 난임이라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난임? 남 일이라 생각했던 일이 우리 부부에게도 벌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는 고민을 했고 서로 다른 결론을 내었죠. 신랑은 자연적으로 생긴다면 아이를 낳겠지만 지금의 생활이 만족스럽기 때문에 임의대로 아이를 낳기 위해 노력하고 싶지 않아했고, 전 글쎄요..

 

지금생각해보면 저도 아이를 간절히 바란건 아녔지만 결혼을 하고 일정시간이 되면 자연스럽게 아이를 출산하고 그렇게 부부생활도 일정한 패턴으로 변화가 생겨야 한다 생각했고 슬슬 결혼 2년차, 3년차가 되자 주변에서 왜 아직 아이가 없냐는 가벼운 안부에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면서 나중에 더 늦기전에 그때 후회하기전에 시도는 해봐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양가 부모님께는 비밀로 하고 신랑을 설득하였고 의정부에 있는 모 산부인과에 다니기 시작했죠. 그리고 다시 배란일을 맞춰보고 인공수정을 4, 시험관을 1. 그렇게 시간은 또 1년이 지났고 호르몬의 영향으로 전 어마어마하게 살도 찌고 국가에서 일부 지원은 되지만 지금처럼은 아녔기에 돈도 상당히 들었죠..

 

오랜 기다림 끝에..

 

1년 반 동안 병원 시술을 하면서 몸이 계속 지쳐가고 있었기에 시술을 멈추고 몸부터 다스려야겠다는 생각에 한의원을 다니며 체중관리를 하였고 다시 예전의 모습을 얼추 찾아가고 있을 때, 우연히 사회복지 선배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저와 비슷한 상황에 고민을 하다가 서울에 있는 모 전문병원에 갔더니 임신이 되었다는 소식, 그래서 밑져야 본전이니 한번 가보라고.. 의정부에서만 쭉 생활했던 전 그리 멀지 않은 서울이었음에도 굳이 서울까지?란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번이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에 한번 해보기로 했습니다. 이땐 신랑도 크게 지지하지 않았고 사실 조금 외롭기도 했네요.

 

서울의 병원을 방문했더니 아직 나이가 많진 않지만 이미 인공수정과 시험관을 시도해봤기에 바로 시험관 시술을 해보자 하셨고 직장생활을 하였기에 새벽에 출발하여 아침 8시 진료를 받으며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인공수정도 그렇지만 시험관 시술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본인이 스스로 호르몬 주사를 자신의 몸에 시술해야했고 난자를 과배란 시켜 채취를 한 뒤, 외부에서 정자와 교배하여 일정기간이 지난 후, 다시 여성의 몸에 주입하는 것이기에 저의 노고와 달리 신랑은 딱 한번 정자채취만 하면 되는 참으로 불공평한 시술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고집해서 진행하는 것이었기에 힘들어도 군소리 없이 참으로 잘 버텼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기억하는 그 날.. 20143월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은 날이기도 했지만 충격과 환희로 가득찬 날이기도 했습니다. 피검사를 통해 임신가능 수치를 확인하는 날이었는데 수치가 너무 높게 나왔고 이는 쌍둥이일 때 그렇게 된다고.. ? 쌍둥이? 하하하하

 

그렇게 저희 두 부부에게 결혼 5년 만에 쌍둥이가 찾아왔습니다. 그 해 겨울, 20141222, 아주 건강하고 잘생긴 쌍둥이 아들(객관적으로도 참 잘 생겼답니다..)이 한꺼번에 둘씩이나 저희 두 부부에게 찾아왔고 그 아이들 덕분에 7평의 신혼집에서 15평의 4층 빌라의 3층으로 이사도 하게 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희 부부에게도 쌍둥이가 찾아오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쌍둥이들 덕분에 1년에 한 번씩 가던 해외여행이 없어졌고 개인적인 생활도 없어졌지만 15평의 3층 빌라도 네 식구가 생활하기엔 열악하다고 판단하여 더 열심히 아껴서 쌍둥이의 돌잔치를 며칠 앞두고 신축빌라(비록 지금은 다시 아파트 전세를 살고 있습니다)를 매매하여 아이들의 놀이방을 만들어주고 아이들이 시원하고 따뜻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직장생활하며 쌍둥이를 키우느라 고되기도 했지만 아이들의 웃는 모습에 피로가 싹~ 풀리고 혹여 부부끼리 다툼이 있더라도 아이들 이야기 하다보면, 아이들의 재롱을 보다가 언제 싸웠냐는 듯 금새 화해하기도 하고 왜 어리석게 자녀는 계획한다고 되는게 아닌데

참 건방졌구나란 반성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셋째가 태어났어요~

 

그렇게 쌍둥이와 단란하게 네 식구가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아가던 어느 날..

 

아마도 그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시댁에 하루 맡기고 부부 둘이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그리고 한 달 뒤, 우리 부부에게 또 한 번의 생명이 찾아온거죠..^^

 

지난 세월 정말 많은 임신테스트기를 해봤지만 성공인 적이 없었기에 이번에도 단지 생리가 조금 늦어지고 있다고만 여기다가 아무래도 쐬~한 느낌에 테스트 결과, 생전 처음 보는 두 줄.. 사실 그 땐 반갑기 보다 쌍둥이만 있어도 정말 행복한데 다시 아이출산으로 인해 경력이 단절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덜컹 겁부터 났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임신 사실을 신랑에게 전했을 때, 신랑의 첫 반응이 당황과 부담으로 인해 환영이 아녔기에 더 맘적으로 좋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참으로 어리석게 자녀계획을 세웠고 맘처럼 되지 않았으며, 힘든 시간을 통해 소중한 아이들을 얻었기에 우리에게 찾아온 생명을 임의대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그렇게 저는 세 자녀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셋째는 이쁜 딸이 태어났네요^^

 

셋째가 뱃속에 있을 때, 저희 두 부부관계가 가장 좋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갑자기 세 아이의 아빠가 된다는 심적, 경제적인 부담감으로 신랑은 밖으로 돌기 시작했고 저는 저대로 임신한 상태에서 쌍둥이 보살피랴, 직장일 하랴, 시댁 챙기랴 너무 힘든데 제 맘을 알아주지 않는 신랑에게 서운해서 참으로 많이 싸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울기도 많이 울었고 신랑 원망도 많이 했고 뱃속에 아이가 없었다면 시원하게 소리라도 질렀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또 원망스럽고 속상하고 그렇게 임신후기까지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혹여 셋째가 그 영향으로 안좋으면 어쩌나란 걱정도 많았는데 다행히 아주 건강하게 태어났네요.. 그리고 참 아이러니하게 아빠를 아주 많이 좋아한답니다.

 

곧 여섯 식구가 됩니다!!

 

다행히 저희 부부관계도 셋째 출산을 얼마 앞두고 부모님의 배려로 쌍둥이를 잠시 맡기고 12일 여행을 다녀오면서 많은 대화를 통해 회복되었습니다.

 

신랑의 부담감을 알게 되었고 자녀가 태어나기 전에는 두 사람에게 맞춰진 초점이 쌍둥이가 태어난 이후부터 아이들 중심으로 생활하면서 신랑에게 소원해졌고 신랑도 자녀가 어리니까 당연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점점 아내의 소원함에 대화는 줄고 외부로 관심을 돌렸던 것 같다는 고백을 하며 저희 두 부부는 다시 서로를 위해서도 노력하자고 다짐과 함께 예전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너무 친해졌나요??셋째를 출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임신이 되었네요.. 이게 말이 되나요? 난임으로 판정받고 2년 동안 힘들게 노력해서 겨우겨우 시험관을 통해 출산을 한 저희 부부에게 또 임신이라뇨? 이번엔 두 사람이 비슷한 고민을 했습니다.

 

아무리 하늘이 주신 선물이라지만 우리 살림에 넷은 아니지 않냐~ 아직 셋째가 너무 어린데.. 이제 막 백일 지났는데.. 이건 정말 말이 안된다.. 그래서 인공유산을 생각하게 되었고 실제로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제 맘이 편치가 않았습니다. 아이를 출산하게 될 경우 닥치는 어려움보다 아이를 지우게 될 경우 수술대에 올라야 하는 두려움, 수술 후에 밀려올 후회가 더 제 자신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랑과 다시 의논을 했습니다. 당장은(실제로 당장이 아닐수도 있죠..) 정말 많이 힘들 테지만 올해 말부터 시작되서 내년 1년간은 정말 말이 안되게 힘들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또 다시 생명을 주신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고, 우리도 아이가 생기지 않아 간절히 바랄 때도 있었는데.. 본인 밥그릇은 가지고 태어난다는데.. 이런저런 이유를 만들며 한 번 해보자라고 의기투합(?)을 했습니다. 짝짝짝!! 잘했죠??ㅎㅎ

 

그렇게 저희 부부는 올해가 지나고 내년 1월이 되자마자 네 아이의 부모가 됩니다. 셋째와는 14개월 차이나는 2년 터울 넷째.. 그리고 그 아이는 아들이라네요.. 이왕 딸이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욕심은 끝이 없죠?

 

쌍둥이가 6살이긴 하지만 12월 끝생으로 만 5년이 되지 않았고 아직 걷지도 못하는 셋째가 있고 전 배가 계속 불러오지만 분명 시간이 지나고 나중에 지금의 우리 부부의 결정이 참으로 잘했다 할 날이 올 것이라 기대해봅니다.

 

저희집은 오늘도 왁자지껄합니다. 쌍둥이는 태어날 때부터 함께여서 그런지 한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서로를 찾는 우애 좋은 형제가 되었고 여동생을 살뜰히 챙기면서 하루빨리 뱃속의 막내(분명합니다..)가 태어나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고 저희 부부도 각자의 직장생활로 힘든 하루를 보냈음에도 아이들 웃는 모습에 또 힘을 얻는 이제 제법 부모가 된 듯합니다.

 

출산율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요즘 시대에 역행하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힘든건 잠깐이지만 자녀는 때를 지나면 놓쳐버리는 것이기에 결혼을 계획하고 있거나 아직 자녀가 없는 부부들은 자녀출산에 대해 다시 긍정적으로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출산율과 반대로 이혼율을 높아지고 있는데 이는 쉽게 결혼을 결심하게 되는 이유도 있지만 자녀가 없으면 더 신중하지 못하는 것 또한 사실일 듯합니다.

 

처음 서로에게 느꼈던 사랑의 결실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자녀출산은 필수여야 한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계획처럼 되는 것 또한 아니기에 저희처럼 어리섞에 계획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국가에서도 셋째, 넷째 자녀출산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첫째자녀부터 해결되어야 하는 과제(경력단절, 사회적 인식, 자녀보호체계 등)에 고민해봤으면 합니다.

최우수상/조선미 (news82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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