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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의정부시 아이사랑 수필공모전 '대상'

이지영-'연근에게 묻다'

기사입력 2019-10-06 10:19 최종수정 2019-10-06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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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의정부시 아이사랑 수필공모전

대상 이지영


서걱 서걱 서걱.
씽크대에 서서 검은 흙으로 뒤덮인 연근의 껍질을 깎아내다 문득 궁금해졌다. 만일 윤회가 있다면, 이 아이는 어떤 생을 돌아 연근으로 태어난 것일까

 

작은 연꽃 씨앗으로 뿌려져 연잎과 연꽃을 피어내며 진흙 속에서 뿌리로 살아온 날들. 짙푸르고 커다란 연잎을 물 위로 띄워 올리고 화려한 연꽃을 물 위로 피어내느라 혼신의 힘을 다 했을 연근일 것이다.

 

가닥 가닥의 가늘고 얇은 뿌리로는 그 무게가 힘에 부쳐 뭉텅 뭉텅 덩이지게 제 몸을 불려가면서 위로 위로 힘겹게 밀어 올렸을 연잎과 연꽃들

 

제 새끼와도 다름없는 넓은 잎과 큰 꽃들을 물 위로 밀어 올리고 차가운 물 속과 진흙 속에서 무거운 숨을 토해내느라, 덩어리진 몸뚱이 여기저기에 숭숭 커다란 구멍마저 뚫려 버렸다.

 

그리고는 그마저도 세상에 먹거리라는 이름으로 내어 주고서야 끝이 나는 연근의 삶이우리네들의 엄마같다, ‘부모같다는 생각에 갑자기 눈물이 왈칵 났다.

 

엄마, ‘부모살아가는 우리네들

연근으로 살아온 이 뚱뚱해진 덩이뿌리가

 

나는 26살에 남편에게 시집와서 48살이 된 23년간 시부와 함께 살고 있다. 시부께서는 54살에 아내를 암으로 잃으셨고 76살에 중증치매환자가 되셨다

 

그 시절에 누구나 그러셨듯 시부는 가족을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건설현장에서 일을 했고 자신의 끼니를 제때 챙기지 못하는 것 역시 당연한 일로 알며 세월을 살아 온 부모였다. 네 아이들의 가난한 부모로 사느라 자신들의 입성에 신경 쓸 겨를이 없던 아버지와 어머니

 

딸 셋에 아들 하나, 네 남매의 부모로 1960,1970년대를 열심히 살아오신 시부께 크나큰 불행이 찾아왔다. 시부가 52살 되던 어느 여름, 생계를 위해 건물 청소일을 하던 49살 아내가 뇌종양으로 쓰러졌다.

 

뇌종양을 너무 늦게 발견해서 2차 수술 후 먼저 하늘로 떠나보낸 아내아내를 보내고 큰 절망과 죄책감에 1년여를 폐인으로 사시던 시부는 고3이었던 막내딸(지금의 막내 시누이)을 보고 힘을 내셨다한다. 그렇게 아내가 없이 휑한 안방에서 시부는 4년여를 홀로 지내셨다.

 

시부 홀로 지내신 지 어언 5년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 남편과 결혼 약속을 한 26살의 나는 남편 손을 잡고 시부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여자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던 어수선한 집안 풍경 속에서 내가 제일 처음 본 광경은, 시부 혼자 드시고 계셨을 스티로폼 도시락에 담긴 찐만두와 소주를 곁들인 밥상 이었다

 

아들과 함께 집에 들어서던 나를 보고 정말로 너무나 좋아하시며 내게 저녁으로 무얼 먹겠냐고 물으시던 시부. 홀로 드시고 계셨을 만두와 소주가 마음아파 제가 저녁을 만들어 드리겠다고 팔을 걷고 처음 만들어 드린 된장찌개.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시부께 아부지라고 부르게 된 것은……

 

아부지는 참 좋은 분이셨다. 건설일을 하시며 퇴근 하실 때는 항상 전화를 걸어 첫 손주를 품고 있는 며느리가 무얼 먹고 싶은지 물으셨고, 의정부 시장을 지나 오시며 탐스러운 제철 과일과 싱싱한 생선들을 집으로 사다 나르셨다.

 

생선 손질에 서툰 며느리에게 너털웃음을 웃어 주시고 손수 생선을 다듬어주시던 분. 지금은 23살이 된 첫 손녀가 태어나자 품에 안고, 등에 업고 다니시며 동네방네 자랑하시던 분.

 

2년 후 태어난 손자녀석이 너무 귀해 잘 안지도 못하시던 분. 아버님이 아닌 아부지로 부르는 며느리를 친딸들보다 더 예뻐라 하셔서 딸들의 질시를 받던 분.

 

내게는 지금도 아부지가 사 주신 계절별 옷들이 몇 벌 남아있고, 6년만에 반지하를 벗어나던 날 아부지가 마련해 주신 닷 돈 순금 목걸이와 석 돈짜리 순금 반지가 있다

 

남편이 하고 있던 사업이 망해서 6년간 반지하로 가족 모두 터를 옮겨가서 생활할 때 누구보다 힘겨워하시던 분당신이 그간 모아놓으신 2천여만원의 통장을 슬몃 내 손에 쥐어주시며 내가 미안하다며 우시던 분아버지는 나에게 버팀목이었고 푸근한 이불 같은 존재였다.

 

엄마! 할아버지 방에 똥이 또 떨어졌어. 할아버지 똥싸셨나봐!”

엄마! 식탁 밑에 오줌! 할어버지 밥 드시다가 오줌 싸셨나봐!”

사모님, 여기 경비실인데요. 아버님께서 여기 계세요.”

아줌마! 할아버지께서 화단에 변을 보고 계세요!”

 

5년 전인 2014년 가을, 아부지는 중증치매 환자가 되셨다그리고 8년전인 201210, 1613살 두 남매를 둔 나는 늦둥이를 낳았다. 두 돌이 된 늦둥이와 치매환자가 된 아부지를 돌보며 흘린 내 눈물은 호수를 이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침대에 걸 터 앉은 채 바지와 팬티 앞자락만 내린 채 방바닥에 소변을 보신 아버지를 보며 급기야는 아부지를 붙들고 나는 엉엉 울고 말았다.

 

아부지, 아부지 왜 이래남편 말고 아부지 믿고 살라며!”

엉 엉 우는 내 옆에서 두 돌배기 늦둥이 막내도 엉엉 울고 엉 엉 우는 우리 둘을 보며 아부지는 빙글 빙글 웃음을 지은채 내 손을 꼭 잡으셨다

 

할아버지, 이거 해봐.” 올해 1학년이 된 막내가 24조각짜리 퍼즐과 72조각짜리 퍼즐을 들고 아부지 방으로 갔다.

 

할아버지는 나보다 애기니까 쉬운거. 이건 내꺼. 우리 누가 빨리 맞추나 시합하는 거야. 준비 땅!”

 

주간보호센타를 다녀오신 아부지는 손주와 마주앉아 진지하게 퍼즐을 맞추신다. 복숭아를 깍아 방으로 들어가 둘 사이에 가만히 앉자 막내가 운을 뗀다.

엄마, 할아버지 편 들지마. 할아버지꺼 해 주면 안 돼. 그건 반칙이야.”

 

손주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신 양 막내의 머리를 스윽 하고 쓰다듬으시는 아부지. 그런 둘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5년 전 아부지가 치매라는 사실에 못내 힘겨워하던 내 모습과 아부지가 싸놓으신 소변에 넘어지고 대변에 미끄러지던 막내의 모습이 떠오른다.

 

유달리 손재주도 많으시고 명민하셨던 아부지가 치매환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나는 아부지와 참 많이도 싸웠다.

 

손이 많이 가는 두 돌배기 아들과 한창 예민한 시기인 중학 3학년 고등 2학년 아이들우리 대가족은 갑작스럽게 닥쳐온 할아버지의 변화와 병세에 많이 허둥지둥 댔었다.

 

그 시간들이 어언 5우리는 23년간 함께 살아 온 대가족이다. 결혼하면서부터 함께 살아 온 시부는 나의 아부지(아버지)이며 막내와 띠동갑도 넘게 나는 큰 아이 둘은 나의 조력자들이고, 남편은 우리집의 기둥이다.

 

주간 보호센타를 다니신지 어느덧 4년째가 되어가는 시부께서는 많은 호전을 보이셨다. 어눌해진 말투가 약간 불편하긴 해도 막내와 게임도 하시고 함께 식사도 할 수 있게 되셨고, 남편과 21살의 큰 아들은 시부를 모시고 찜질방도 간다.

 

물론 팬티형 기저귀를 착용하신 후 말이다. 23살의 큰 딸은 대학 4학년 2학기가 되는 이번 학기에 대기업 인턴쉽에 참여중이다. 퇴근 후 집에 와서는 저녁 식사후 설거지를 돕고 막내의 목욕을 도맡아서 하고 있다.

 

토요일, 일요일 이틀은 가족 모두가 집에 있는 시끌벅적한 시간. 아부지도 주간보호센터를 쉬시고 남편도 회사를 쉬고 아이들도 학교를 쉬는 집이 꽉 차는 이틀. 우리집은 그야말로 난리 북새통이다.

 

하루 세 끼에 중간 새참 한 끼 까지 도합 4끼의 먹거리를 준비해야하는 그 날이 오면 우리식구들은 자연스럽게 모두 분업모드가 된다. 심지어 8살 막내까지.

 

아침에 눈을 뜨면 남편은 아부지가 밤새 소변으로 지려놓으신 침대시트를 갈고 아부지의 방을 청소하고, 다음달이면 군대를 가는 21살 큰 아들은 할아버지를 모시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시켜드린다.

 

나는 대가족의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23살 큰 딸은 막내를 깨워 씻겨 내보내고 방의 이불들을 정리한다. 씻고 나온 8살 막내는 식탁 위에 식구수 대로 수저와 저분을 놓고 상차림을 돕는다.

 

81살 노인이 있는 우리집의 주말 아침 식사시간은 언제나 8. 결혼 후 23년간 주말이라고 늦잠을 자 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아부지께서 여행을 가셨을 때, 아부지께서 병원에 입원을 하셨을 때 등등. 심지어 아부지와 함께 휴가나 여행을 갔을 때의 아침식사 역시 8시였다. 남들은 어떻게 그렇게 사냐고 묻지만, 늘 그렇게 살아 온 우리 가족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인 것이다.

 

대가족으로 서로를 돌보며 살아 온 시간들이 아이들에게도 큰 양분이 되어 큰 아이 둘은 스스로의 몫을 충분히 해내는 마음 따뜻하고 가진게 많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8살 꼬마 늦둥이는 할아버지부터 아빠 엄마 누나 형아까지 수직으로 내려오는 넘치는 사랑에 애교만점인 장난꾸러기로 자라나고 있고, 치매 3급이신 81살 우리 아부지는 무뚝뚝하지만 속 정 깊은 51살 아들과 따뜻한 마음을 가진 21살 큰 손주, 곰살맞은 23살 큰 손녀, 장난꾸러기 8살 늦둥이 손주까지 모두가 부러워하는 것을 다 갖고 계신 복 많은 노인네이시다.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8살 막내가 3살 때, 할아버지가 싸 놓으신 오줌에 미끄러져 벌러덩 하고 넘어져 내가 너무나 속상해 막 울자 내 손을 잡고 아이가 한 말을.

엄마 아파? 괜찮아 난 안아파.”

 

그래. 나 혼자 아파 한 것이다.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치매라는 거대한 병 앞에서 가족과 함께가 아니라 나 혼자 해내야 한다는 착각속에서 나 혼자 아팠던 것이다. 세 아이가 뭉쳐서 나를 웃게 하고 세 아이가 함께 할아버지와 남편을 위로한다. 가족이란, 함께 살아가며 함께 나아가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이름이다.

 

연근 덩이를 들고 가만히 들여다보며 시작한 상념이 어느새 노트 몇장을 채워 나갔다.

 

연근에게 가만히 말해본다.

든든하고 아름다운 자식들을 피어내고 밀어 올리느라 한 생을 힘겹게 살아온 연근아, 너의 자랑이었을 연꽃과 연잎이라는 자식들을 화려하게 키워낸 보람은 있었지만 다음 생에는 연근으로도 엄마로도 부모로도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겠다.

 

무거운 숨을 뱉어내느라 덩어리진 몸뚱이에 숭숭 구멍 뚫린 연근, 그리고 자식들 바라지로 제 몸 돌볼새 없이 세월을 밟고 뛰어다니느라 뼈에 숭숭 구멍이 뚫린 부모

 

우리 이번 생에는 자식들로 인해 행복했고 보람있었으니, 다음 생에는 넓은 하늘의 구름 한조각으로, 넓은 바다의 파도 한자락으로 그리 자유롭게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대상/이지영 (news82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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